선교사님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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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오영철 작성일25-07-31 16:09 조회29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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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님 정말 감사합니다.〉
요리 목회자는 여러 번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단지 형식적인 인사가 아니라, 진심이 느껴지는 감사였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 짧은 시간 동안 반복해서 감사를 표현하는 그의 모습에서 그 마음이 전해졌다. 그것은 그가 나에게서 재정적인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일 수도 있다. 그가 감사한 이유는 카렌 교회가 재정과 기도를 통해 선교사를 파송할 수 있는 길을 안내받았기 때문이다.
2025년 7월 29일, 태국 SIM 선교회 사무실에서 카렌족 선교사 파송에 관한 작은 모임이 있었다. 참석자는 SIM 태국 대표 조나단 선교사, 선교동원과 인사 담당자인 액, 파송 행정을 맡은 눗, 선교사 후보생 ‘빤’, 시소뿌 교회의 요리 목회자, 그리고 나였다. SNS를 통해 매홍손 빠이에 있는 매삥노이 러패 목사와 빠이 지방회 총무인 두앙캄도 참여했다.
이 모임은 지난 5월 2일부터 5일까지 매홍손에 있는 카렌 교회들을 방문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그 방문은 카렌 교회가 라틴 선교사를 후원하며 지상명령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도전하기 위함이었다. 그 방문에서 세 교회 모두 라틴 아메리카 선교사들을 선교할 의지를 보여주었다. 그들이 후원할 선교사를 소개받기 위하여 5월 17일 조나단 선교사와 만났다. 그는 태국 SIM 대표로서 그 단체서 라틴아메리카 선교사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때 조나단이 이렇게 물었다.
“카렌 선교사 후보생이 있는데, 왜 그녀를 파송하지 않으시나요?”
그는 라틴 선교사 후원도 좋지만 카렌선교사 후보생을 선교사로 파송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나는 깜짝 놀라서 그 선교사 후보생이 누군지 물었다. 놀랍게도 그녀는 내가 섬기는 목회자훈련원 졸업생인 라꺼뽀 목사의 딸이었다. 그는 스물셋의 어린 딸을 선교사로 보낸다는 것이 부담되어 아버지는 망설이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그의 딸 ‘빤’의 선교사 헌신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가 있는지 설명했다. 단순히 한 명의 헌신이 아니라, 태국카렌침례총회(TKBC) 역사상 최초로 전임 선교사를 파송하는 길이라고 설명했다. 라꺼뽀 목사는 흔쾌히 동의했다. 그리고 파송 가능성이 있는 세 교회에 연락했고, 오늘이 그 첫 만남이었다.
오늘 만남에서 우리는 ‘빤’의 소개, SIM의 선교사 관리 체계, 앞으로의 일정 등을 간단히 나누었다. 회의는 1시간 남짓이었고, 세련된 형식은 없었다. SNS 연결도 어렵게 됐고, 안건도 미리 의논 된 것이 없어서 내가 임의로 이끌었다. 하지만 모두들 흥분해 있었다. 태국 카렌교회가 이제는 선교사를 파송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모임이 끝나고 요리 목회자를 차로 모셔다 드리는 동안, 그는 계속 감사하다고 했다.
“이렇게 교회가 마땅히 해야 할 선교사 파송에 대해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의 감격은 단순히 정보를 받은 것 때문이 아니었다. 선교사 후보생을 소개받고, 그를 통해 교회가 하나님의 지상명령에 참여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에 깊이 감사하고 있었다. 그의 마음은 그 이상이었다.
“우리 교회에서 그녀를 파송하고, 파송예배도 드리고 싶습니다.”
“그녀의 아버지, 지방회 총무와도 이야기 나누고 싶습니다.”
요리 목회자는 내 생각보다 더 깊은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말했다.
“교회가 선교에 대한 분명한 이해를 갖게 되면, 교회 예산의 10퍼센트는 선교사 후원에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말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그의 교회는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깊은 산골 교회다. 교인들은 대부분 가난한 시골 농부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영성은 깊고 단단하다. 1년에 두 번 특별 금식기도를 하고, 2024년에는 교회 헌금이 100만 바트(약 4천만 원)를 넘었다. 153명의 세례 교인 대부분이 십일조를 드렸기 때문이다.
요리 목회자는 외형적으로 보면 평범한 시골 농부이다. 정상적인 학교는 초등학교만 졸업했고, 고등학교는 통신으로 마쳤다. 신학 훈련은 3개월 단기 과정이 전부였고, 27세에 총각으로 담임목회자가 되었다. 이후 2년 과정의 목회자 훈련원 과정을 수료한 것이 전부다. 회의 중에는 질문도 거의 없었기에, 사실 나도 그가 오늘 모임을 잘 이해했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말은 내 걱정을 무색하게 했다.
“오늘 참석하면서 선교사 파송에 대해 중요한 이해를 얻게 되었습니다.”
“오늘 오지 않았다면 이런 이해는 없었을 겁니다.”
“이런 귀한 자리에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요리’목회자는 경제적, 사회적, 교육적, 민족적으로 ‘주변부’에 속한 인물이다. 그를 보면 ‘현대 개신교 선교의 아버지’ 윌리엄 캐리(William Carey, 1761–1834)가 떠오른다. 그는 영국 사회의 하층민이었고, 직업은 구두 수선공이었다. 정규 신학교를 다니지 않았고, 영국 국교도도 아니었다. 침례교인이라는 이유로 종교적으로도 변두리에 위치했다. 하지만 그는 복음에 대한 열정과 통찰을 지니고 있었다. 결국 그는 중심을 흔들었고, 세계 선교의 흐름을 바꾸는 인물이 되었다.
윌리엄 캐리를 통해 영국이 19세기 세계 선교의 중심이 되었듯, 요리 목회자 또한 태국 카렌침례교회가 선교하는 교회로 나아가는 데 있어 중요한 기폭제가 될 수 있다. 주변부의 작은 자를 통해 선교의 길을 여신 하나님께서, 이번에도 요리 목회자를 통해 중심을 향한 선교의 물결을 이끄시기를 기대한다. 시대를 초월해 일하시는 하나님은 지금도 약한 자를 통해서도 선교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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