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선교사를 파송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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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오영철 작성일25-06-18 19:38 조회10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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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선교사를 파송해야 합니다〉
카렌족과 더불어 사역하는 선교사로 사역하면서 꼭 보고 싶은 장면이 있다. 그것은 카렌교회가 선교사를 파송하여 타민족과 외국에서 선교 사역을 감당하는 모습이다. 오늘은 그 날이 가까워졌음을 느낀 날이었다. 왜냐하면 현지 교회 지도자들의 이야기 속에서 선교사에 대한 인식 전환이 일어났고, 선교사 파송에 대한 확언이 분명히 들려왔기 때문이다. 말뿐 아니라 그들의 태도와 반응 속에서 진심이 묻어났기에 더 깊게 다가왔다.
2025년 5월 3일과 4일, 태국 매홍손에 위치한 매삥노이 교회를 방문했다. 4일 주일 오전 8시 30분, 교회 지도자 열 분과의 만남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매삥노이 교회가 보여주는 모범적인 모습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전했고, 이제 카렌교회도 선교해야 할 때가 되었음을 함께 나누었다. 그 이후, 신학교 교수를 준비 중인 ‘따치’ 형제가 카렌교회가 왜 선교사역에 참여해야 하는지를 그의 언어로 명확하게 설명했다. 그의 설명은 현장에 있던 지도자들의 마음에 울림을 주었다.
이때 빠이 지방회 총무인 ‘두앙캄’이 깊은 감동 속에서 이렇게 말했다.
“선교사란 우리 교회 건축을 도와주고 세미나를 열어주는 사람인 줄만 알았는데, 우리가 후원해야
할 분이었네요.”
그동안 총회 회의에 참석하며 들어왔던 선교사 이야기가 대부분 외부 지원과 관련된 것이었기에 그렇게 이해했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 방문자들의 설명을 들으며, 그의 마음속에 선교사는 카렌교회가
책임지고 후원해야 할 사역자라는 새로운 인식이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까지 선교사를 우리가 후원해야 한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일이 너무 복된 일이고,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두앙캄 총무가 선교사에 대해 성경이 제시하는 그 본래적 의미를 바르게 이해하고 고백해준 것에 대해 마음 깊이 감사한다.
예배 중 담임목사 암누아이는 광고 시간에 놀라운 말을 덧붙였다.
“이제 우리도 언젠가 선교사를, 우리를 넘어 다른 나라에도 파송해야 합니다.”
그 전날, 선교에 대해 나눈 개인적인 대화 속에서 다소 조심스러웠던 그의 태도를 떠올리며 놀라움과 감격이 밀려왔다. 하나님의 선교는 사람의 계산이나 예상을 뛰어넘는다.
선교사의 역할이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았다. 나는 그것을 ‘주창자’라고 이해한다. 주창자란 어떤 생각이나 방향, 제도를 제안하고 함께 나누는 사람이다. 카렌교회도 선교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소중하고 가치 있기 때문이다. 아직 그들이 그것을 깊이 생각하지 않았을지라도, 그 의미와 가치를 함께 나누고, 그들에게 적합한 방식으로 선교의 길을 찾아가도록 돕는 것이 선교사의 ‘주창자’로서의 역할이라고 본다. 사실 그들 안에는 하나님께서 이미 준비해 놓으신 사람들과 자원들이 있다. 아직 스스로의 자원을 다 인식하지 못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이미 그들 안에 사람과 자원을 준비해 두셨다.
매삥노이 교회는 태국 북서부 산악지방에 위치해 있으며, 약 250여 명의 세례교인이 있다. 2024년 한 해 동안 드린 십일조는 약 200만 바트(6만 달러)였고, 그 중 10%인 20만 바트(6천 달러)는 카렌총회에, 또 다른 10%는 빠이 지방회에 상회비로 드렸다. 이 교회는 여러 전도처를 돌보며, 800만 바트(약 3억 원) 이상의 교회 건축도 외부 도움 없이 스스로 감당해냈다. 기도와 금식, 헌신과 헌금의 삶은 이미 선교사에게 본이 되는 교회의 모습이다. 이 교회를 볼 때마다 하나님께서 이 공동체를 하나님의 선교를 위해 예비해두셨다는 확신이 깊어진다. 그리고 이제 그 때가 다가오고 있다.
2002년, 필립 젠킨스는 『The Next Christendom』에서 “서구 기독교의 시대는 끝나고, 남반구 기독교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베일러대학교(Baylor University)에서 세계 기독교 및 종교 변화에 대한 연구로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석학이다. 그의 저서는 다수의 언어로 번역되었고, 서구 교회의 자기 인식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는 단순한 예측이 아니라, 실제 통계와 세계 기독교의 역사적 흐름을 바탕으로 변화의 중심축이 어떻게 이동했는지를 분명하게 분석하였다.
세계 기독교의 중심은 이미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그리고 일부 아시아로 이동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를 포함한 많은 교회들은 여전히 그 지역들을 ‘선교지’로만 바라보고, 도움의 대상처럼 대하는 경향이 있다. 두앙캄 총무가 선교사를 “지원자”로만 이해했던 배경도, 결국 우리가 그렇게 보여주었고, 그렇게 말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교회는 이제 그동안 자신이 해 온 선교 방식에 대해 정직하게 돌아봐야 한다. 세계 교회와 선교의 지형이 바뀐 지금, 여전히 과거의 방식에 머물러 있다면 그것은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크신 선교를 겸손히 배워야 할 기회를 놓치는 일이 될 수 있다.
카렌족은 태국과 미얀마의 변방에 속한 소수민족이며, 경제적·사회적으로도 약자에 해당한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건실한 교회들이 세워졌다는 사실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이는 세계 기독교의 흐름 속에서, 한때 경제적·정치적으로 주변에 있었던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 교회들이 세계 교회의 중심으로 떠오른 역사와도 깊이 닮아 있다. 하나님은 지금도 약한 자를 통해 강한 자에게 자신의 공의와 사랑, 구원을 증거하신다. 그런 맥락에서 카렌교회가 선교하는 교회로 서게 되는 일은 단지 한 민족 공동체의 성장을 넘어, 세계 교회가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징표라 할 수 있다.
사실 이러한 방식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초대교회의 연약함을 통해 로마 제국의 중심에서 우주적 구원의 사건을 이루셨고, 이후 교회사 속에서도 반복적으로 주변부를 통해 중심을 새롭게 하셨다. 카렌교회가 그 뜻에 응답하며 한 걸음씩 선교의 자리로 나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이것이 단지 인간의 결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임을 확신하게 된다. 그리고 그 뜻이 열매 맺어가는 현장 곁에 함께 서 있다는 사실은 선교사가 경험하는 큰 은혜이며 특권이다. 우리도 선교사를 파송해야 한다는 한 카렌 목회자의 확언은 그것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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