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세의 카렌족 부인과 25 세의 서양 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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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오영철 작성일10-07-13 00:30 조회4,99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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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세의 카렌부인과 25세의 서양총각
가끔 전혀 생각지 않은 일을 만나면 어떻게 이해가 안되는 일을 경험한다.
최근 한 카렌여인이 미국에서 벌어진 사건이 그런 경우이다.
그 여인은 좋은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는 여인이었다.
총회에서 오랫동안 경리업무를 성실하게 하였고, 그 과정에서 대학을 졸업하였다.
태국카렌족에서는 드물게 영어도 제법 하게 되었다.
그녀는 능력을 인정받아 아시아의 소수민족을 돕는 국제 NGO 에서 직원으로 채용되었다.
사무실에서는 그녀가 필요하였지만 축복하면서 보내주었다.
두명의 딸도 성실하게 잘 자랐고 특히 성적은 상위권이었다.
남편은 어려운 학생들을 돕는 단체에서 중직을 맡고 있었다.
태국일반인들보다 높은 봉급, 안정된 직장, 외국으로의 여행, 단란한 가정, 부러워할 것이 없는 가정에 전혀 예기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
그 여인이 속한 단체에서 미국으로 연수를 보내주었는데 그것이 화근이 된 것이다.
늦은 막한 40세에 혼자가 미국에서 몇 달 동안 연수를 받는 동안에 아프게 되었다.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는데 익숙하지 않은 절차를 챙겨준 젊은 미국인이 있었다.
25세의 서양 총각이었다.
외로움과 육체적인 아픔으로 인하여 힘들어 하였을 때 도움을 준 젊은이는 특별한 고마움을 느끼다가 그 이상으로 발전되었다.
그 총각이 적극적으로 접근하였다.
결국 두 사람은 헤어질 수 없는 관계가 되어 버렸다.
그 과정에서 남편은 그 사실을 알게 되어 놀랐지만 그녀가 돌아오기를 원하였다.
놀랍게도 그녀는 서양남자와 살기를 결정하고 미국에서 혼인신고를 하고 말았다.
가정이 깨어진 것이다.
큰 딸은 미국으로 가고 싶어서 결국 아버지가 양보하여 미국으로 보낸다고 한다.
다음달인 7월 초면 그녀가 큰 딸을 데리러 태국으로 온다고 한다.
여러 생각들을 한다.
카렌들이 부러워하는 것 중에 한가지라도 없었으면 가정은 깨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만약, 그녀가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다면, 그녀가 영어를 못하였다면, 그녀가 국제 NGO에서 근무를 하지 않았다면, 인정을 받지 못하였다면, 미국 연수를 가지 않았다면…..
이런 상황에서 목회는 어떻게 하여야 할까.
옆에서 많은 분들이 도와 자포자기한 남편이 아제 조금은 나아졌다.
큰딸이 가면 그곳에서는 나름대로 안정을 찾을 것이다.
그러나 큰 질문은 남아 있다.
그것이 정말 행복한 것일까 이다.
때로 조금 모자란 것이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때로 조금 못 배운 것이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때로 조금 가난한 것이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왜냐하면 부족함이 우리의 모습을 바로 인정하게 하고, 우리의 경계를 넘어서지 않게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하나님이 우리의 공급자로 힘이신 것을 놓치지 않게 하기 때문이다.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는 말씀을 생각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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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전혀 생각지 않은 일을 만나면 어떻게 이해가 안되는 일을 경험한다.
최근 한 카렌여인이 미국에서 벌어진 사건이 그런 경우이다.
그 여인은 좋은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는 여인이었다.
총회에서 오랫동안 경리업무를 성실하게 하였고, 그 과정에서 대학을 졸업하였다.
태국카렌족에서는 드물게 영어도 제법 하게 되었다.
그녀는 능력을 인정받아 아시아의 소수민족을 돕는 국제 NGO 에서 직원으로 채용되었다.
사무실에서는 그녀가 필요하였지만 축복하면서 보내주었다.
두명의 딸도 성실하게 잘 자랐고 특히 성적은 상위권이었다.
남편은 어려운 학생들을 돕는 단체에서 중직을 맡고 있었다.
태국일반인들보다 높은 봉급, 안정된 직장, 외국으로의 여행, 단란한 가정, 부러워할 것이 없는 가정에 전혀 예기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
그 여인이 속한 단체에서 미국으로 연수를 보내주었는데 그것이 화근이 된 것이다.
늦은 막한 40세에 혼자가 미국에서 몇 달 동안 연수를 받는 동안에 아프게 되었다.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는데 익숙하지 않은 절차를 챙겨준 젊은 미국인이 있었다.
25세의 서양 총각이었다.
외로움과 육체적인 아픔으로 인하여 힘들어 하였을 때 도움을 준 젊은이는 특별한 고마움을 느끼다가 그 이상으로 발전되었다.
그 총각이 적극적으로 접근하였다.
결국 두 사람은 헤어질 수 없는 관계가 되어 버렸다.
그 과정에서 남편은 그 사실을 알게 되어 놀랐지만 그녀가 돌아오기를 원하였다.
놀랍게도 그녀는 서양남자와 살기를 결정하고 미국에서 혼인신고를 하고 말았다.
가정이 깨어진 것이다.
큰 딸은 미국으로 가고 싶어서 결국 아버지가 양보하여 미국으로 보낸다고 한다.
다음달인 7월 초면 그녀가 큰 딸을 데리러 태국으로 온다고 한다.
여러 생각들을 한다.
카렌들이 부러워하는 것 중에 한가지라도 없었으면 가정은 깨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만약, 그녀가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다면, 그녀가 영어를 못하였다면, 그녀가 국제 NGO에서 근무를 하지 않았다면, 인정을 받지 못하였다면, 미국 연수를 가지 않았다면…..
이런 상황에서 목회는 어떻게 하여야 할까.
옆에서 많은 분들이 도와 자포자기한 남편이 아제 조금은 나아졌다.
큰딸이 가면 그곳에서는 나름대로 안정을 찾을 것이다.
그러나 큰 질문은 남아 있다.
그것이 정말 행복한 것일까 이다.
때로 조금 모자란 것이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때로 조금 못 배운 것이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때로 조금 가난한 것이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왜냐하면 부족함이 우리의 모습을 바로 인정하게 하고, 우리의 경계를 넘어서지 않게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하나님이 우리의 공급자로 힘이신 것을 놓치지 않게 하기 때문이다.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는 말씀을 생각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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