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아내의 몫까지 살아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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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오영철 작성일11-07-12 08:34 조회4,37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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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아내의 몫까지 살아야죠
사람이 살면서 가장 큰 고통과 시련은 배우자와의 이별일 것이다.
신앙인들도 기본적으로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
영원한 소망과 영생의 믿음을 선명하게 고백하고 경험한다고 해서 이별의 고통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수십 년을 같이 살던 사랑하는 아내가 이 세상에서 더 이상 같이 지낼 수 없는 상황이라면 얼마나 허전할까?
황망함과 뼈에 사무치는 그리움과 외로움이 견딜 수 없는 무게로 다가올 것이다.
그런 상황을 맞이한 한 장로님의 고백이다.
“이젠 아내의 몫까지 살아야죠.”
하나님께 원망하는 마음이 여전히 남아 있다고 한다.
아내는 보내는 것이 이렇게 힘든 일일줄 몰랐다고 한다.
더군다나 이렇게 식구가운데 먼저 보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금부터 10년 전, 자신의 생명보다 귀한 아들을 먼저 보냈다.
그때 식구들이 다짐한 것이 이제 아들의 몫까지 살자고 한 것이다.
그들의 다짐처럼 가족은 아들의 몫까지 살아왔다.
치과의사로서 남들을 섬긴 그의 분량은 엄청났다.
40여 차례의 해외치과봉사를 포함하여 150차례가 넘는 봉사활동을 했다.
모두 2만 명이 넘는 분들이 그가 이끈 팀을 통하여 도움을 받았다.
그런데 이번에 사랑하는 아내가 예기치 않은 병으로 주님 품으로 가신 것이다.
주님과 가정을 사랑하시던 참 아름다운 분이셨다.
그가 고백한 것처럼 욥의 고통을 경험하며 순교자와 같은 처지라고 한다.
그런데 그의 고백이 그것으로 마치지 않았다.
“이젠 아내의 몫까지 열심히 살아야죠.”
한 인생이 할 수 있는 승화된 소망의 고백이다.
원망과 탄식 그리고 그리움과 괴로움으로 흐트러질 수 있는 상황가운데에서도 그의 눈은 하나님께 항하고 있었다.
죽음을 넘어선 소망의 힘은 어디까지일까?
아들과 아내를 먼저 보냈지만 그들의 몫을 대신 살고자 하는 장로님의 고백이 맴돈다.
왜냐하면 그의 고백은 인간의 상식을 넘어선 하늘 소망의 위대함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면서 가장 큰 고통과 시련은 배우자와의 이별일 것이다.
신앙인들도 기본적으로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
영원한 소망과 영생의 믿음을 선명하게 고백하고 경험한다고 해서 이별의 고통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수십 년을 같이 살던 사랑하는 아내가 이 세상에서 더 이상 같이 지낼 수 없는 상황이라면 얼마나 허전할까?
황망함과 뼈에 사무치는 그리움과 외로움이 견딜 수 없는 무게로 다가올 것이다.
그런 상황을 맞이한 한 장로님의 고백이다.
“이젠 아내의 몫까지 살아야죠.”
하나님께 원망하는 마음이 여전히 남아 있다고 한다.
아내는 보내는 것이 이렇게 힘든 일일줄 몰랐다고 한다.
더군다나 이렇게 식구가운데 먼저 보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금부터 10년 전, 자신의 생명보다 귀한 아들을 먼저 보냈다.
그때 식구들이 다짐한 것이 이제 아들의 몫까지 살자고 한 것이다.
그들의 다짐처럼 가족은 아들의 몫까지 살아왔다.
치과의사로서 남들을 섬긴 그의 분량은 엄청났다.
40여 차례의 해외치과봉사를 포함하여 150차례가 넘는 봉사활동을 했다.
모두 2만 명이 넘는 분들이 그가 이끈 팀을 통하여 도움을 받았다.
그런데 이번에 사랑하는 아내가 예기치 않은 병으로 주님 품으로 가신 것이다.
주님과 가정을 사랑하시던 참 아름다운 분이셨다.
그가 고백한 것처럼 욥의 고통을 경험하며 순교자와 같은 처지라고 한다.
그런데 그의 고백이 그것으로 마치지 않았다.
“이젠 아내의 몫까지 열심히 살아야죠.”
한 인생이 할 수 있는 승화된 소망의 고백이다.
원망과 탄식 그리고 그리움과 괴로움으로 흐트러질 수 있는 상황가운데에서도 그의 눈은 하나님께 항하고 있었다.
죽음을 넘어선 소망의 힘은 어디까지일까?
아들과 아내를 먼저 보냈지만 그들의 몫을 대신 살고자 하는 장로님의 고백이 맴돈다.
왜냐하면 그의 고백은 인간의 상식을 넘어선 하늘 소망의 위대함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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