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층이 안되면 3층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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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오영철 작성일11-10-01 23:00 조회4,27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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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이 안되면 3층에서
“2층이 안되면 3층에 가면 되죠”
기록적인 물난리 때문에 특별 방송을 하는데 라디오 생방송진행자의 설명이다.
한 사람이 걱정이 되어 궁금해 하는 마을의 상황을 질문한 것에 대한 대답이다.
마을전체가 1층에 이미 물이 차 있으니 2층에 가면 된다고 한다.
그것도 안되면 3층에 가면 된다고 한다.
의미는 그만큼 그 마을의 상황이 어려운 상황을 넉살스럽게 표현한 것이다. 그것도 큰 소리로 웃으면서 대답을 한다.
만약 한국에서 생방송 진행자가 이런 식으로 설명을 하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당장 상식이 없는 진행자라고 지적하고, 다음 방송 진행은 거의 못하였을 것이다.
이재민들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한 자격 없는 진행자라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라디오 방송을 들어보니 24시간 생방송으로 진행을 하는 진행자 모두가 비슷한 스타일이다.
어려움을 당한 수재민들을 걱정 안 하는 것이 아니다.
24시간 전화를 통하여 연락을 받고 바로 기관이나 가능한 사람에게 요청을 하여 도움을 준다.
음식제공자를 찾거나, 이동이 가능한 배를 요청하는 물론이고, 작업이 가능한지 불가능하지 위급한 상화에서 중요하지 않은 부분까지 도움을 주고 있다.
심지어 여성들을 위한 생리대까지 요청하면서 세심한 배려를 한다.
그렇지만 분위기는 침울하고, 가라앉지만 않다.
웃음도 끊이지 않고, 농담도 간간히 한다.
수십 년 만의 엄청난 규모의 홍수여서 치앙마이 시 반 정도는 잠길 정도인데 지방 라디오 진행방식은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을 앞에 둔 것 같지 않을 정도이다.
공무원들을 독려하기도 하고, 수재민들을 위로하는 것을 잊지 않지만, 오락방송에서나 할 것 같은 농담 멘토도 계속된다.
우리도 같은 수해를 입게 될 상황이지만 그들의 방송이 어색하지 않다.
여유가 있어 보이기까지 한다.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과 같이 느끼고 나누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기본적인 자세이어야 한다.
그런데 그 자세를 가진다는 것이 삶에서 여유를 무시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여유란 극한 상황 속에서도 가능하며, 그것을 통하여 한 쉼을 돌릴 수 있는 것 같다.
엄청난 홍수피해를 입고 있는 중에도 여유를 보이는 치앙마이 라디오 방송진행자들의 넉살스런 진행은 수해민들에게 짜증보다는 쉴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준다.
천재지변 중에 여유로운 모습은 꼭 배우고 싶은 태국인의 장점이다.
“2층이 안되면 3층에 가면 되죠”
기록적인 물난리 때문에 특별 방송을 하는데 라디오 생방송진행자의 설명이다.
한 사람이 걱정이 되어 궁금해 하는 마을의 상황을 질문한 것에 대한 대답이다.
마을전체가 1층에 이미 물이 차 있으니 2층에 가면 된다고 한다.
그것도 안되면 3층에 가면 된다고 한다.
의미는 그만큼 그 마을의 상황이 어려운 상황을 넉살스럽게 표현한 것이다. 그것도 큰 소리로 웃으면서 대답을 한다.
만약 한국에서 생방송 진행자가 이런 식으로 설명을 하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당장 상식이 없는 진행자라고 지적하고, 다음 방송 진행은 거의 못하였을 것이다.
이재민들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한 자격 없는 진행자라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라디오 방송을 들어보니 24시간 생방송으로 진행을 하는 진행자 모두가 비슷한 스타일이다.
어려움을 당한 수재민들을 걱정 안 하는 것이 아니다.
24시간 전화를 통하여 연락을 받고 바로 기관이나 가능한 사람에게 요청을 하여 도움을 준다.
음식제공자를 찾거나, 이동이 가능한 배를 요청하는 물론이고, 작업이 가능한지 불가능하지 위급한 상화에서 중요하지 않은 부분까지 도움을 주고 있다.
심지어 여성들을 위한 생리대까지 요청하면서 세심한 배려를 한다.
그렇지만 분위기는 침울하고, 가라앉지만 않다.
웃음도 끊이지 않고, 농담도 간간히 한다.
수십 년 만의 엄청난 규모의 홍수여서 치앙마이 시 반 정도는 잠길 정도인데 지방 라디오 진행방식은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을 앞에 둔 것 같지 않을 정도이다.
공무원들을 독려하기도 하고, 수재민들을 위로하는 것을 잊지 않지만, 오락방송에서나 할 것 같은 농담 멘토도 계속된다.
우리도 같은 수해를 입게 될 상황이지만 그들의 방송이 어색하지 않다.
여유가 있어 보이기까지 한다.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과 같이 느끼고 나누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기본적인 자세이어야 한다.
그런데 그 자세를 가진다는 것이 삶에서 여유를 무시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여유란 극한 상황 속에서도 가능하며, 그것을 통하여 한 쉼을 돌릴 수 있는 것 같다.
엄청난 홍수피해를 입고 있는 중에도 여유를 보이는 치앙마이 라디오 방송진행자들의 넉살스런 진행은 수해민들에게 짜증보다는 쉴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준다.
천재지변 중에 여유로운 모습은 꼭 배우고 싶은 태국인의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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