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누커의 큰 슬픔과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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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오영철 작성일12-02-24 22:54 조회4,21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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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누커의 큰 슬픔과 소망
큰 슬픔을 만난 사람들을 만날 때가 가장 어려운 순간 중 하나이다.
가장 옆에 사람이 가장 필요하지만, 막상 무슨 이야기를 나눌까 쉽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 만난 수누커라는 사역자도 그런 경우 중 하나이다.
작년에 신학교를 졸업한 그가 당한 슬픔은 감당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7년 전에 아버지가 축구를 하다가 갑자기 쓰러져 그대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이듬해에는 어머니의 몸에서 암이 발견되었는데 오래지 않아서 세상을 떠났다.
남아있는 동생과 의지하면서 살고 있었다.
착하고 공부를 잘하던 동생은 졸업을 얼마 앞두고 작년 12월에 어이없는 죽음을 맞이했다.
친구 집에 갔다가, 친구의 권총에 의해 머리에 총상을 입고 세상을 떠난 것이다.
정확한 이유도 모른 채 가 버렸다.
7년 만에 단란하던 가정이 세 식구를 먼저 보내고 혼자 남은 것이다.
작년 12월에 그 소식을 듣고 걱정을 하였는데 어제부터 신학교에서 보였다.
어제와 오늘이 신학교 졸업생동창회에서 1년에 한번씩 모이는 모임이 있어서 참석하기 위해서이다.
어제 한 교수집에서 만났을 때 그냥 말없이 등만 쓸어 주었는데 오늘은 자연스럽게 점심시간에 만나게 되어 일부러 식사를 같이 하자고 하여 앉았다.
“살다 보면 생각지 않은 아픔과 슬픔들이 있어서 쉽지 않을 것입니다.”
식사를 하다가 이야기를 이렇게 꺼냈다.
나의 동생 이야기를 했다.
아무런 관계도 없는 폭력조직에 의해 살해당한 동생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나님에 대한 원망과 깊은 슬픔 그리고 그리움….
독생자의 죽음을 슬퍼하신 하나님의 슬픔과 그분의 동행.
눈물과 아픔이 없는 주님나라에서 더불어 살고 있음에 대한 소망,
그리고 남은 우리가 주님의 부르심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 몫까지 이야기한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 그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얼마나 동생이 그리고 부모님이 그리울까
눈물이나 아픔이 없는 주님나라에서의 부모님과 동생에 대한 믿음이 있지만, 그렇다고 그의 그리움과 슬픔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야기를 하다가 잠시 침묵이 흐르는 동안 전화기에서 동생의 사진을 보여준다.
한 사진은 작년 졸업을 앞두고 찍은 졸업사진이고, 다른 한 사진은 사건현장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사건현장의 사진은 지우면 좋겠다고 하면서, 지금의 일을 질문한다.
태국과 버마의 국경에 위치한 교회가 운영하는 고아원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었다.
대부분 국경의 버마와 카렌족의 전투 중에 희생된 카렌군인들의 자녀라고 한다.
노르웨이에서 운영에 관한 지원을 교회를 통하여 하고 있다고 한다.
20여명의 고아들이 그의 동생처럼 느껴질 것이다.
수누커 사역자만큼 그들의 아픔을 가까이 느낄 사람도 찾기 어려울 것이다.
고등학교 때 사역자로 헌신하여 부모님이 먼저 주님 품으로 가셨지만, 신학교에 입학하였다고 한다.
작년 졸업을 하고 사역할 때 동생과의 이별은 무너지는 것 같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그는 아픔과 그리움을 여전히 가졌지만 그에게 부른 삶을 살고 있다.
이번에 총동창회에 모임의 참석은 그의 소망을 가지고 살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우리의 슬픔을 아시는 영원한 주님의 임재와 위로하심을 소망하는 날이다.
큰 슬픔을 만난 사람들을 만날 때가 가장 어려운 순간 중 하나이다.
가장 옆에 사람이 가장 필요하지만, 막상 무슨 이야기를 나눌까 쉽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 만난 수누커라는 사역자도 그런 경우 중 하나이다.
작년에 신학교를 졸업한 그가 당한 슬픔은 감당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7년 전에 아버지가 축구를 하다가 갑자기 쓰러져 그대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이듬해에는 어머니의 몸에서 암이 발견되었는데 오래지 않아서 세상을 떠났다.
남아있는 동생과 의지하면서 살고 있었다.
착하고 공부를 잘하던 동생은 졸업을 얼마 앞두고 작년 12월에 어이없는 죽음을 맞이했다.
친구 집에 갔다가, 친구의 권총에 의해 머리에 총상을 입고 세상을 떠난 것이다.
정확한 이유도 모른 채 가 버렸다.
7년 만에 단란하던 가정이 세 식구를 먼저 보내고 혼자 남은 것이다.
작년 12월에 그 소식을 듣고 걱정을 하였는데 어제부터 신학교에서 보였다.
어제와 오늘이 신학교 졸업생동창회에서 1년에 한번씩 모이는 모임이 있어서 참석하기 위해서이다.
어제 한 교수집에서 만났을 때 그냥 말없이 등만 쓸어 주었는데 오늘은 자연스럽게 점심시간에 만나게 되어 일부러 식사를 같이 하자고 하여 앉았다.
“살다 보면 생각지 않은 아픔과 슬픔들이 있어서 쉽지 않을 것입니다.”
식사를 하다가 이야기를 이렇게 꺼냈다.
나의 동생 이야기를 했다.
아무런 관계도 없는 폭력조직에 의해 살해당한 동생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나님에 대한 원망과 깊은 슬픔 그리고 그리움….
독생자의 죽음을 슬퍼하신 하나님의 슬픔과 그분의 동행.
눈물과 아픔이 없는 주님나라에서 더불어 살고 있음에 대한 소망,
그리고 남은 우리가 주님의 부르심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 몫까지 이야기한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 그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얼마나 동생이 그리고 부모님이 그리울까
눈물이나 아픔이 없는 주님나라에서의 부모님과 동생에 대한 믿음이 있지만, 그렇다고 그의 그리움과 슬픔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야기를 하다가 잠시 침묵이 흐르는 동안 전화기에서 동생의 사진을 보여준다.
한 사진은 작년 졸업을 앞두고 찍은 졸업사진이고, 다른 한 사진은 사건현장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사건현장의 사진은 지우면 좋겠다고 하면서, 지금의 일을 질문한다.
태국과 버마의 국경에 위치한 교회가 운영하는 고아원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었다.
대부분 국경의 버마와 카렌족의 전투 중에 희생된 카렌군인들의 자녀라고 한다.
노르웨이에서 운영에 관한 지원을 교회를 통하여 하고 있다고 한다.
20여명의 고아들이 그의 동생처럼 느껴질 것이다.
수누커 사역자만큼 그들의 아픔을 가까이 느낄 사람도 찾기 어려울 것이다.
고등학교 때 사역자로 헌신하여 부모님이 먼저 주님 품으로 가셨지만, 신학교에 입학하였다고 한다.
작년 졸업을 하고 사역할 때 동생과의 이별은 무너지는 것 같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그는 아픔과 그리움을 여전히 가졌지만 그에게 부른 삶을 살고 있다.
이번에 총동창회에 모임의 참석은 그의 소망을 가지고 살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우리의 슬픔을 아시는 영원한 주님의 임재와 위로하심을 소망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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