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니제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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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손영희 작성일15-05-08 14:10 조회5,72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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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조금 잠잠해 진 니제르에서 소식 전합니다.
니제르 상황
한국에서의 6개월의 안식년(안식월?) 을 마치고 니제르에 도착하여 그 동안 비워 뒀던 집과 짐을 정리하며 사역을 준비하고 시작하려는 때에 전에 없던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니제르는 아직도 이슬람이 90%가 넘는 모슬렘 국가입니다.
대문만 나서면 바로 보이는 모스케만 해도 여러 곳. 그들의 하루 다섯 번 기도 시간 마다 여기 저기 확성기에서 들려 오는 그들의 기도 소리가 귓전을 때리며 울려 퍼집니다.
확성기 소리에 다시 익숙해 져 갈 무렵에 프랑스에서 일어난 언론사 사건의 여파가 이 곳에서도 엄청난 힘으로 다가 왔습니다.
2월 16일 천 km 이상 떨어진 지방 도시에서 교회가 습격을 받고 불에 타고 기독교인들 집들 역시 공격 받고 불에 타고 했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날인 17일 니아메이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파리 언론사 사건으로 성난 사람들의 분노가 기독교 쪽을 향했고 그 날 하루에만 70여 교회가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 학교들도 많은 피해를 입었습니다.
사전에 미리 조사를 해 놨었는지 폭도로 변한 사람들은 순식간에 교회들을 찾아 다니며 부수고 불을 지르고 교회 비품이나 물건들을 다 쌓아 놓고 불을 질러 잿더미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 일 후에 니제르 기독교인들은 물론이거니와 일부 모슬렘들 조차 자기들이 그렇게 폭력적으로 변할 수 있었다는데 충격을 받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모슬렘이 대다수이긴 하지만 그래도 니제르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순하고 평화로운 사람들이었는데 이 전 까지 전혀 보이지 않던 모습이 드러난 것입니다.
그런 상황 중에 저 역시 아주 긴장되고 어려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한 밤 중에 급히 가방 하나 싸 들고 선교부에 속한 선교사자녀 학교로 피신을 가서 교실에서 자고, 다시 집에 왔다가 주변 상황이 다시 급해지면 또 가고.
니제르에 사는 동안 전에 없던 일을 경험한 때 였습니다. 게다가 집에서 몇 백 미터 떨어진 작은 교회도 불에 타고 그 교회 안에 있던 사택도 완전히 불에 타 그 가족은 몸에 걸친 것 빼고는 아무 것도 건지지 못 한 채 다른 곳에 피신을 가 있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지금은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갈 수 있었습니다. 특히 제가 사는 지역이 피해를 제일 많이 받아 교회들이 무사한 데가 거의 없이 부서지고 불타고…
그 사건 이후 교회 안에 살기를 원하던 사역자들은 거의가 다 교회 밖에서 사는 것이 만약의 경우를 위해 더 낫다는 결론을 내리고 하나씩 둘 씩 교회 밖에 있는 집들을 찾고 있습니다.
제가 사는 지역에 있던 선교사들도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고 현지인 기독교인들도 다른 곳으로 가고… 주변을 둘러 보니 이전엔 그래도 급하면 찾아갈 수 있던 크리스찬들이 지금은 거의 다 다른 동네로 떠나 버렸습니다. 더러 남아 있는 사람도 있지만 두 세 집이 여기 저기 떨어져서 있을 뿐입니다. 저도 이사 가는 게 좋지 않겠냐는 권고를 여러 번 받기도 했습니다.
감사한 일
하지만 이 일로 피해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일이 일어나자 기독교인들이 자성하기 시작했고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는 기독교인들이 생겨 났습니다. 교회를 떠났던 사람들이 교회로 다시 돌아 오는 일도 생겼습니다.
그리고 말로만 듣던 그런 심한 핍박이 자신들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현실로 깨닫게 되는 기회도 됐습니다. 그 후 교회에서는 전에는 잘 하지 않던 핍박에 대한 설교가 계속 되었고 핍박에 대비하는 믿음에 대한 설교도 많이 들려 왔습니다.
기독교인들을 만나는 자리에선 지난 주 설교가 어떤 내용이었나, 사람들이 어땠나 하는 등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기도 했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교회들이 의자가 없어 – 몽땅 다 태워서 남아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고 당연히 앉을 만한 뭐가 없어 – 집에서 각자 의자를 가져 오라고 한 교회도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교회들이 힘을 내어 일어서고 있습니다.
이전 보다 더 많이 기도하고 더 많이 예배에 참석하고 더 진지하게 기독교인임을 자각하고 있습니다.
다만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장소들이 없어진 관계로 많은 교회에서 주일학교가 중단되거나 여러 반이 통합되어 제대로 진행이 되지 않고 있어 주일학교가 빨리 정상화 되기를 기도합니다.
한국에서 돌아 온 이 후 이런 혼란기를 거치며 저의 생활과 사역도 다시 리듬을 찾아 가고 있습니다. 심한 더위와 극심한 먼지 바람, 날마다 나타나는 여러 가지 필요와 그럼에도 길들여진 없이 사는(?) 생활이라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앞으로 나아 갑니다.
건강은, 한국에 있는 동안 늘여 온 몸무게는 여지 없이 한 달 반 만에 다 사라지고 완전히 이전 상태로 원상복귀 됐습니다. 그래도 호흡기를 제외하고는 건강한 편입니다. 감사의 제목입니다.
사역
***재봉학교 사역
지난 텀 까지 하던 사라 재봉학교는 이제 현지인들에 의해서 아주 잘 운영이 되어 이번 텀 부터는 현지 교회에서 하는 국제교회 재봉학교를 돕기로 했습니다. 시작 단계에 있는 작은 재봉학교(재봉교실)에 나가서 여자 아이들에게 자수와 뜨개질을 가르치는데 전통 옷 재봉을 가르치는 현지인 자매 교사와 함께 해야 할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현재 열 두 명의 학생들이 있는데 두 명은 교회 성도 가정에서 온 아이들이고 나머지는 다 모슬렘입니다. 심지어는 일하다 말고 모슬렘 기도 시간에 기도한다고 사라지기도 하는, 기도 제목을 엄청나게 제공을 하는 아이들이기도 합니다. 대부분이 학교를 다니지 않아 글을 모르기 때문에 읽기 쓰기 교육도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한 아이는 결혼을 하지 않았지만 아이가 있어 아직 세 살이 채 안 된 딸아이를 매일 데리고 와 종일 같이 지내고 있습니다.
다행이고 감사한 것은 이 중 다수의 아이들이 열심히 배움에 임하고 있어 기대가 된다는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끝내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아이들이 있어 더 많은 기도의 필요성을 느끼게 됩니다. 특히 이 재봉교실이 이 동네의 작더라도 힘있는 복음전파의 씨앗이 되도록 기도 합니다.
***신학생 부인 사역
올해에도 선교부에서 하는 신학교에 학생들이 여러 지역에서 와서 공부하고 있고 그들을 따라 온 가족들이 있습니다. 그 중 바이블 센터 안에 있는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가족들을 중심으로 신학생 부인들과 함께 모여 자수와 뜨개질을 배웁니다. 이 일들로 후에 교회에서 남편의 사역을 돕거나 부족한 생활비를 벌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참석하는 사람들의 국적도 다양합니다. 니제르, 차드, 베넹, 콩고 등에서 온 사람들이 함께 모여 배우고 일하는데 시작하면서 하는 성경퀴즈 시간이 참 재미있기도 합니다. 이 그룹은 다른 그룹과 달리 기독교인들의 모임이라 바로 성경얘기를 할 수 있어 다른 그룹들과 분위기가 다르기도 합니다.
이들의 배움이 알차게 돼서 배운 것을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도와주십사고 기도합니다.
엘림학교 특활반
엘림 학교는 다른 선교단체에서 새운 기독교 학교입니다. 초, 중, 고가 함께 있는데 그 중 중고등 학생들에게 특활반을 가르칩니다. 그들은 저의 시간을 미술시간이라고 합니다만 미술이라고 하기엔 아주 제한적이나 예능 과목이 없는 저들에게는 그 시간도 미술시간이라고 여겨지나 봅니다.
주로 공작을 가르치는데 3시간 동안 쉬는 시간 없이 계속해도 지루한 줄 모르고 하는 아이들 때문에 저 역시 쉴 틈 없이 교실을 휘젓고 다니며(?) 아이들을 지도해도 계속 힘주시는 하나님께 무척 감사 드립니다. 특히나 다시 시작하면서 지난 해에 배운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그 동안 배운 것들 것 여러 번 활용했다는 이야기에 이 사역의 필요성을 더 느끼기도 했습니다.
계속 나오는 20여명 넘는 이 아이들이 다 모슬렘입니다. 그들에게 지혜로운 방법으로 주님을 전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레마 고아원
레마 고아원은 계속 식구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니아메이 외곽으로 집을 지어 이사간 후로 공간에 대한 압박은 줄어 들었지만 장소가 넓어지니 정부 기관에서도 아이들을 더 데려 옵니다. 감사한 건 레마 고아원은 관청 공무원들이 인정할 정도로 아이들의 분위기나 성격들이 다른 고아원들보다 월등하게 밝고 긍정적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특별히 정해진 후원처가 없는데다 식구들이 계속 늘어나면서(현재 58명) 필요도 계속 늘어 갑니다. 저의 파송교회에서 오래 전부터 계속 후원해 주시는 쌀 세가마 (150kg) 가 가장 일정한 후원이고 그 동안 2년 정도 한 한국인 교민 사업가가 그것 보다 좀 더 많은 양의 양식을 후원해 주셨는데 지난 연말 이후로 사정이 여의치 않아 중단 된 상태입니다. 그 이후로 다시 식량의 압박이 심해져 주식인 곡식이 많이 부족합니다. 그들이 파송 교회의 변함없이 지속적인 후원에 더욱 감사하고 있습니다.
다행인건 땅이 있어 야채는 재배를 할 수 있어 자급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방문객들도 종종 찾아 주고 있어 아이들에게 여러 가지로 유익한 경험들도 하고 놀이도 하고 선물도 받고 해서 처음 같은 소외감은 덜 하지만 정기적인 공급은 아직도 많이 더 필요합니다. 특히 식량 문제는 언제나 이들을 힘들게 하는 레마의 기도제목입니다.
***여행
지난 2-3 개월 사이에 시골에 네 차례 다녀 왔습니다. 가까운 곳은 40여 킬로 떨어 진 곳. 좀 먼 곳은 4백여 킬로 떨어 진 곳. 다른 곳은 350 킬로 정도 거리.
상황이 상황인지라 좀 긴장되면서도 계획되어 있던 대로 떠났습니다.
그 중 한 곳은 동네에 시멘트로 지어진 건물은 모스케가 유일했고, 또 대부분의 지역에선 학교 교실이 모자라 가마니로 얽어서 지은 교실에서 아이들이 수업을 하고 있었고 가마니 교실 대부분은 키가 매우 작은 저도 머리가 닿아 숙이고 있어야 할 정도로 낮고 작은 교실이었습니다.
어디를 가도 학교는 부족했고 이제 어른들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려고 해도 중학교는 다른 동네에 있어 엄두를 못 내는 그런 상황입니다.
글자를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뜨개질을 가르쳐 달라는 사람들도 많고, 자기 동네 와서 살거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상황은 나날이 복잡하고 위험해져 가도 어딜 가나 복음을 필요로 하는 영혼들은 넘쳐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기도와 물질로 후원해 주시는 교회와 모든 분들의 사랑과 눈물의 기도 없이는 이 땅에서 벌써 어떻게 됬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가끔 합니다. 때로는 철렁 하기도 하고 때로는 아슬아슬 하기도 하고 때로는 즐겁기도 한 니제르에서의 삶을 허락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께서 니제르에 하나님의 나라를 더 확장하기를 원하신다고 믿습니다.
하나님께 니제르를 위한 사역에 쓰시는 후원 교회와 목사님 이하 모든 성도님들께 늘 크신 축복이 임하기를 간구합니다.
기도 제목을 정리합니다.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 속하지 않은 이방인에게 대하여도 저희가 주의 큰 이름과 능한 손과 펴신 팔을 위하여 먼 지방에서 와서 이 전을 향하여 기도하거든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무릇 이방인이 주게 부르짖는 대로 이루사 땅의 만민으로 주의 이름을 알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처럼 경외하게 하옵시며 또 내가 건축한 이 전을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줄을 알게 하옵소서.
주의 백성이 그 적국으로 더불어 싸우고자 하여 주의 보내신 길로 나갈 때에 저희가 주의 빼신 이 성과 내가 주의 이름을 위하여 건축한 전 있는 편을 향하여 여호와께 기도하거든
주는 하늘에서 저희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그 일을 돌아 보옵소서.>
(역대하 6;32-35)
**2월의 폭력시위 사태 중에도 안전하게 지켜 주심을 감사.
** 니제르의 상황이 안정되고 이*람 과격 단체 보코*람이 니제르에서 나가도록. 하나님께서 그들의 활동을 막고 사람들을 보호해 주시도록.
**국제교회 재봉학교가 더 발전하고 지역에 복음의 빛이 되도록.
**신학생 부인들이 지속적으로 잘 배우고 배운 것을 잘 활용할 수 있도록. 그리고 그들의 가정과 건강을 위해서.
**엘림학교 특활반 학생들에게 은혜를 주시도록. 그들이 주님을 향한 마음 문이 열리도록.
**레마 고아원을 통해 크리스찬이 한 명도 없는 그 지역에 주님의 이름이 높임을 받을 수 있도록. 그리고 레마에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 주시도록.
**나 자신의 영육간의 강건함을 위하여. 늘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게을리 하지 않도록.
2015. 4. 16.
니제르에서 손영희 선교사 올림
니제르 상황
한국에서의 6개월의 안식년(안식월?) 을 마치고 니제르에 도착하여 그 동안 비워 뒀던 집과 짐을 정리하며 사역을 준비하고 시작하려는 때에 전에 없던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니제르는 아직도 이슬람이 90%가 넘는 모슬렘 국가입니다.
대문만 나서면 바로 보이는 모스케만 해도 여러 곳. 그들의 하루 다섯 번 기도 시간 마다 여기 저기 확성기에서 들려 오는 그들의 기도 소리가 귓전을 때리며 울려 퍼집니다.
확성기 소리에 다시 익숙해 져 갈 무렵에 프랑스에서 일어난 언론사 사건의 여파가 이 곳에서도 엄청난 힘으로 다가 왔습니다.
2월 16일 천 km 이상 떨어진 지방 도시에서 교회가 습격을 받고 불에 타고 기독교인들 집들 역시 공격 받고 불에 타고 했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날인 17일 니아메이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파리 언론사 사건으로 성난 사람들의 분노가 기독교 쪽을 향했고 그 날 하루에만 70여 교회가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 학교들도 많은 피해를 입었습니다.
사전에 미리 조사를 해 놨었는지 폭도로 변한 사람들은 순식간에 교회들을 찾아 다니며 부수고 불을 지르고 교회 비품이나 물건들을 다 쌓아 놓고 불을 질러 잿더미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 일 후에 니제르 기독교인들은 물론이거니와 일부 모슬렘들 조차 자기들이 그렇게 폭력적으로 변할 수 있었다는데 충격을 받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모슬렘이 대다수이긴 하지만 그래도 니제르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순하고 평화로운 사람들이었는데 이 전 까지 전혀 보이지 않던 모습이 드러난 것입니다.
그런 상황 중에 저 역시 아주 긴장되고 어려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한 밤 중에 급히 가방 하나 싸 들고 선교부에 속한 선교사자녀 학교로 피신을 가서 교실에서 자고, 다시 집에 왔다가 주변 상황이 다시 급해지면 또 가고.
니제르에 사는 동안 전에 없던 일을 경험한 때 였습니다. 게다가 집에서 몇 백 미터 떨어진 작은 교회도 불에 타고 그 교회 안에 있던 사택도 완전히 불에 타 그 가족은 몸에 걸친 것 빼고는 아무 것도 건지지 못 한 채 다른 곳에 피신을 가 있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지금은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갈 수 있었습니다. 특히 제가 사는 지역이 피해를 제일 많이 받아 교회들이 무사한 데가 거의 없이 부서지고 불타고…
그 사건 이후 교회 안에 살기를 원하던 사역자들은 거의가 다 교회 밖에서 사는 것이 만약의 경우를 위해 더 낫다는 결론을 내리고 하나씩 둘 씩 교회 밖에 있는 집들을 찾고 있습니다.
제가 사는 지역에 있던 선교사들도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고 현지인 기독교인들도 다른 곳으로 가고… 주변을 둘러 보니 이전엔 그래도 급하면 찾아갈 수 있던 크리스찬들이 지금은 거의 다 다른 동네로 떠나 버렸습니다. 더러 남아 있는 사람도 있지만 두 세 집이 여기 저기 떨어져서 있을 뿐입니다. 저도 이사 가는 게 좋지 않겠냐는 권고를 여러 번 받기도 했습니다.
감사한 일
하지만 이 일로 피해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일이 일어나자 기독교인들이 자성하기 시작했고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는 기독교인들이 생겨 났습니다. 교회를 떠났던 사람들이 교회로 다시 돌아 오는 일도 생겼습니다.
그리고 말로만 듣던 그런 심한 핍박이 자신들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현실로 깨닫게 되는 기회도 됐습니다. 그 후 교회에서는 전에는 잘 하지 않던 핍박에 대한 설교가 계속 되었고 핍박에 대비하는 믿음에 대한 설교도 많이 들려 왔습니다.
기독교인들을 만나는 자리에선 지난 주 설교가 어떤 내용이었나, 사람들이 어땠나 하는 등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기도 했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교회들이 의자가 없어 – 몽땅 다 태워서 남아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고 당연히 앉을 만한 뭐가 없어 – 집에서 각자 의자를 가져 오라고 한 교회도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교회들이 힘을 내어 일어서고 있습니다.
이전 보다 더 많이 기도하고 더 많이 예배에 참석하고 더 진지하게 기독교인임을 자각하고 있습니다.
다만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장소들이 없어진 관계로 많은 교회에서 주일학교가 중단되거나 여러 반이 통합되어 제대로 진행이 되지 않고 있어 주일학교가 빨리 정상화 되기를 기도합니다.
한국에서 돌아 온 이 후 이런 혼란기를 거치며 저의 생활과 사역도 다시 리듬을 찾아 가고 있습니다. 심한 더위와 극심한 먼지 바람, 날마다 나타나는 여러 가지 필요와 그럼에도 길들여진 없이 사는(?) 생활이라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앞으로 나아 갑니다.
건강은, 한국에 있는 동안 늘여 온 몸무게는 여지 없이 한 달 반 만에 다 사라지고 완전히 이전 상태로 원상복귀 됐습니다. 그래도 호흡기를 제외하고는 건강한 편입니다. 감사의 제목입니다.
사역
***재봉학교 사역
지난 텀 까지 하던 사라 재봉학교는 이제 현지인들에 의해서 아주 잘 운영이 되어 이번 텀 부터는 현지 교회에서 하는 국제교회 재봉학교를 돕기로 했습니다. 시작 단계에 있는 작은 재봉학교(재봉교실)에 나가서 여자 아이들에게 자수와 뜨개질을 가르치는데 전통 옷 재봉을 가르치는 현지인 자매 교사와 함께 해야 할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현재 열 두 명의 학생들이 있는데 두 명은 교회 성도 가정에서 온 아이들이고 나머지는 다 모슬렘입니다. 심지어는 일하다 말고 모슬렘 기도 시간에 기도한다고 사라지기도 하는, 기도 제목을 엄청나게 제공을 하는 아이들이기도 합니다. 대부분이 학교를 다니지 않아 글을 모르기 때문에 읽기 쓰기 교육도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한 아이는 결혼을 하지 않았지만 아이가 있어 아직 세 살이 채 안 된 딸아이를 매일 데리고 와 종일 같이 지내고 있습니다.
다행이고 감사한 것은 이 중 다수의 아이들이 열심히 배움에 임하고 있어 기대가 된다는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끝내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아이들이 있어 더 많은 기도의 필요성을 느끼게 됩니다. 특히 이 재봉교실이 이 동네의 작더라도 힘있는 복음전파의 씨앗이 되도록 기도 합니다.
***신학생 부인 사역
올해에도 선교부에서 하는 신학교에 학생들이 여러 지역에서 와서 공부하고 있고 그들을 따라 온 가족들이 있습니다. 그 중 바이블 센터 안에 있는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가족들을 중심으로 신학생 부인들과 함께 모여 자수와 뜨개질을 배웁니다. 이 일들로 후에 교회에서 남편의 사역을 돕거나 부족한 생활비를 벌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참석하는 사람들의 국적도 다양합니다. 니제르, 차드, 베넹, 콩고 등에서 온 사람들이 함께 모여 배우고 일하는데 시작하면서 하는 성경퀴즈 시간이 참 재미있기도 합니다. 이 그룹은 다른 그룹과 달리 기독교인들의 모임이라 바로 성경얘기를 할 수 있어 다른 그룹들과 분위기가 다르기도 합니다.
이들의 배움이 알차게 돼서 배운 것을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도와주십사고 기도합니다.
엘림학교 특활반
엘림 학교는 다른 선교단체에서 새운 기독교 학교입니다. 초, 중, 고가 함께 있는데 그 중 중고등 학생들에게 특활반을 가르칩니다. 그들은 저의 시간을 미술시간이라고 합니다만 미술이라고 하기엔 아주 제한적이나 예능 과목이 없는 저들에게는 그 시간도 미술시간이라고 여겨지나 봅니다.
주로 공작을 가르치는데 3시간 동안 쉬는 시간 없이 계속해도 지루한 줄 모르고 하는 아이들 때문에 저 역시 쉴 틈 없이 교실을 휘젓고 다니며(?) 아이들을 지도해도 계속 힘주시는 하나님께 무척 감사 드립니다. 특히나 다시 시작하면서 지난 해에 배운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그 동안 배운 것들 것 여러 번 활용했다는 이야기에 이 사역의 필요성을 더 느끼기도 했습니다.
계속 나오는 20여명 넘는 이 아이들이 다 모슬렘입니다. 그들에게 지혜로운 방법으로 주님을 전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레마 고아원
레마 고아원은 계속 식구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니아메이 외곽으로 집을 지어 이사간 후로 공간에 대한 압박은 줄어 들었지만 장소가 넓어지니 정부 기관에서도 아이들을 더 데려 옵니다. 감사한 건 레마 고아원은 관청 공무원들이 인정할 정도로 아이들의 분위기나 성격들이 다른 고아원들보다 월등하게 밝고 긍정적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특별히 정해진 후원처가 없는데다 식구들이 계속 늘어나면서(현재 58명) 필요도 계속 늘어 갑니다. 저의 파송교회에서 오래 전부터 계속 후원해 주시는 쌀 세가마 (150kg) 가 가장 일정한 후원이고 그 동안 2년 정도 한 한국인 교민 사업가가 그것 보다 좀 더 많은 양의 양식을 후원해 주셨는데 지난 연말 이후로 사정이 여의치 않아 중단 된 상태입니다. 그 이후로 다시 식량의 압박이 심해져 주식인 곡식이 많이 부족합니다. 그들이 파송 교회의 변함없이 지속적인 후원에 더욱 감사하고 있습니다.
다행인건 땅이 있어 야채는 재배를 할 수 있어 자급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방문객들도 종종 찾아 주고 있어 아이들에게 여러 가지로 유익한 경험들도 하고 놀이도 하고 선물도 받고 해서 처음 같은 소외감은 덜 하지만 정기적인 공급은 아직도 많이 더 필요합니다. 특히 식량 문제는 언제나 이들을 힘들게 하는 레마의 기도제목입니다.
***여행
지난 2-3 개월 사이에 시골에 네 차례 다녀 왔습니다. 가까운 곳은 40여 킬로 떨어 진 곳. 좀 먼 곳은 4백여 킬로 떨어 진 곳. 다른 곳은 350 킬로 정도 거리.
상황이 상황인지라 좀 긴장되면서도 계획되어 있던 대로 떠났습니다.
그 중 한 곳은 동네에 시멘트로 지어진 건물은 모스케가 유일했고, 또 대부분의 지역에선 학교 교실이 모자라 가마니로 얽어서 지은 교실에서 아이들이 수업을 하고 있었고 가마니 교실 대부분은 키가 매우 작은 저도 머리가 닿아 숙이고 있어야 할 정도로 낮고 작은 교실이었습니다.
어디를 가도 학교는 부족했고 이제 어른들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려고 해도 중학교는 다른 동네에 있어 엄두를 못 내는 그런 상황입니다.
글자를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뜨개질을 가르쳐 달라는 사람들도 많고, 자기 동네 와서 살거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상황은 나날이 복잡하고 위험해져 가도 어딜 가나 복음을 필요로 하는 영혼들은 넘쳐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기도와 물질로 후원해 주시는 교회와 모든 분들의 사랑과 눈물의 기도 없이는 이 땅에서 벌써 어떻게 됬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가끔 합니다. 때로는 철렁 하기도 하고 때로는 아슬아슬 하기도 하고 때로는 즐겁기도 한 니제르에서의 삶을 허락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께서 니제르에 하나님의 나라를 더 확장하기를 원하신다고 믿습니다.
하나님께 니제르를 위한 사역에 쓰시는 후원 교회와 목사님 이하 모든 성도님들께 늘 크신 축복이 임하기를 간구합니다.
기도 제목을 정리합니다.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 속하지 않은 이방인에게 대하여도 저희가 주의 큰 이름과 능한 손과 펴신 팔을 위하여 먼 지방에서 와서 이 전을 향하여 기도하거든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무릇 이방인이 주게 부르짖는 대로 이루사 땅의 만민으로 주의 이름을 알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처럼 경외하게 하옵시며 또 내가 건축한 이 전을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줄을 알게 하옵소서.
주의 백성이 그 적국으로 더불어 싸우고자 하여 주의 보내신 길로 나갈 때에 저희가 주의 빼신 이 성과 내가 주의 이름을 위하여 건축한 전 있는 편을 향하여 여호와께 기도하거든
주는 하늘에서 저희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그 일을 돌아 보옵소서.>
(역대하 6;32-35)
**2월의 폭력시위 사태 중에도 안전하게 지켜 주심을 감사.
** 니제르의 상황이 안정되고 이*람 과격 단체 보코*람이 니제르에서 나가도록. 하나님께서 그들의 활동을 막고 사람들을 보호해 주시도록.
**국제교회 재봉학교가 더 발전하고 지역에 복음의 빛이 되도록.
**신학생 부인들이 지속적으로 잘 배우고 배운 것을 잘 활용할 수 있도록. 그리고 그들의 가정과 건강을 위해서.
**엘림학교 특활반 학생들에게 은혜를 주시도록. 그들이 주님을 향한 마음 문이 열리도록.
**레마 고아원을 통해 크리스찬이 한 명도 없는 그 지역에 주님의 이름이 높임을 받을 수 있도록. 그리고 레마에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 주시도록.
**나 자신의 영육간의 강건함을 위하여. 늘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게을리 하지 않도록.
2015. 4. 16.
니제르에서 손영희 선교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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